3월에 회사를 옮기고 나서 계속 고민했던 것은, 이 새로운 회사가 나랑 맞는지였다. 당연한 고민일지도 모르겠지만, 전 세계적인 불황과 실업의 늪에서 회사를 옮긴다는 것은 분명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고, 그 회사가 잘 맞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바로 바로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다 잘 되어가는 듯이 보였던 회사일은, 5년 이상 회사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빠져나가면서 조금씩 이상해져 갔다. 분명히 내가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 프로젝트인데 엉뚱한 사람이 나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고, 프로젝트 일정을 요구했는데 엉뚱한 자료가 온다거나, 퇴근 시간 직전에 문서 수정을 요구하는 등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 하나 둘 씩 흐트러져 갔다.
윗선에 건의도 넣어보고, 내 매니저와 이야기도 해 보았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러다가 디지털 팀 책임자였던 Darren이 갑자기 해임되는 사건이 있었다. 금요일 아침에 나와 이야기를 하고, 저녁에도 웃으며 인사했는데, 월요일에 그 사람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리고 CEO의 전체 이메일이 도착했다. Darren이 그만 두게 되었고, 사람들에게 미리 알리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황당했다. 같은 팀에 앉아서 일하고 있었는데, 아무런 언질도 없이 가버리다니. 내 매니저도 아무 것도 모르는 듯 했다. 후에 알아본 바에 따르면 금요일 오후에 CEO와의 면담이 있었고, 거기에서 바로 '잘렸다' 고 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회사랑 잘 안 맞으면. 이라고 가벼이 여겼고, 그는 바로 더 큰 회사의 더 높은 직책으로 자리를 잡았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전체 회의에서 CEO가 자기가 CEO 겸 Head of Digital을 맡겠다고 선언했던 것. 전날 보고 온 영화, Horrible bosses가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나서 상황이 정말 나빠지기 시작했다. Senior들이 우르르 그만두었고, 내 매니저였던 Ben도 그만두게 되었다. 회사는 아무도 고용할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큰 프로젝트를 맡을 역량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런던에서는 여력이 없어서 큰 프로젝트는 시애틀 오피스로 보내야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이직 준비를 시작했다. 이직할 타이밍도 아니었고, 별로 자리도 많지 않았던 9월이었지만, 전부터 연락하고 있던 대행사 한 군데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았고, 구직 대행사를 통해 다른 한 군데에서 인터뷰를 잡았다.
그 때부터 재빠르게 움직여서 오퍼를 받고, 임금 협상을 하고, 사직서를 내고, 새로운 회사에 취업하는, 단순하지만 지루한 순서가 반복되었다. 회사의 경영진은 내가 나가면 내 아래 Junior들은 누가 돌보냐며,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지만, 이미 질릴 대로 질려버린 터라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건 배우고, 즐겁게 일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거지, 누군가를 이끌어갈 재목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이 기간에 스트레스 때문인지 난생 처음 폐렴에 걸려서 엄청나게 고생하기도 했던 지라 그냥 빨리 그만두고 싶기도 했다. 회사를 그만 두자 마자 열흘간 방에만 누워 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다시 East London에 돌아와 있다. 새로 옮긴 회사는 재정도 건전하고, 사람들이 회사에 애착이 강한 것 같았다. 첫날 회사에 출근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회사를 자랑스러워하고 일을 재미있어 한다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제 이직 한 달이 되었다. 아직도 배울 것이 많고, 새 조직에서 어리버리하게 돌아다니며 여기 저기 부딪히고 있지만, 나름 마음에 드는 친구도 몇 명 생긴 것 같고, 새 매니저도 Managing director도 좋은 사람이라 다행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내가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곳이란 느낌이 들어 기쁘다.
- 2011/11/30 05:18
- ciaaao.egloos.com/2823767
- 덧글수 : 2



외국인노동자의삶


덧글
2011/11/30 09:25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별 2011/11/30 22:38 #
안녕하세요, 댓글 고맙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엄청 좋아서 바로 엑스레이 찍고, 진단 받고 약 먹고 이제 다 나았어요. 다 나았는지 확인하는 엑스레이도 찍었고요.^^ 런던 렌트는... ㅠ_ㅠ 수십번씩 이스트로 이사와야 되나 싶어요.